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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6. 16世 〉32. <태사공>사헌부감찰공휘형관행장(司憲部監察公諱亨觀行狀)
1. 문헌 목록 〉16. 16世 〉34. <태사공>첨지중추부사공휘형진행적(僉知中樞府事公諱亨晋行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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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태사공>예조정랑공휘향겸행장(禮曹正郎公諱享謙行狀)
<태사공후>예조정랑공휘향겸행장(禮曹正郎公諱享謙行狀) 公與其伯氏僉樞公自幼誠孝特異凡他同里父老咸稱美之曰此兒兄弟必成大人矣其髫齡入學之時挾册而過於所居村前青龍潭上忽焉跌墜于潭中沉身不見傍人驚之急令極出則蒼黃之際舉措安常所挾之册堅執手中水亦不濕於文字長老之見者莫不異丐其志學篤業可見於此而幼稼稚之時己有大人氣像存焉年甫十餘歲己讀經書誦不過數三遍見自驚異最幼時受學於同里偰琒矣及長與伯氏俱受業於同鄉進士李山舉其才藝之聰敏情誠之堅篤進士常加獎許一日兄弟相與掩卷而語曰家道素貧兩親俱老供養無人吾兄弟同為做業勢難兩立將何以安心終業乎於是伯氏辭丈席歸養而公以立身榮親為己責講學甚篤至於登第雖其文藝之拔華而可見誠孝戚感之所致也及其出為青巖察訪也地適遍近其榮養之方無所不至省問之節甘旨之供日走官人頂背相望以成其所志而無憾丐若非誠孝之極何以致此且其所爵秩雖未及清顯而一心奉公以盡事君以忠之義則 忠孝本無二致者豈非公之謂1歟此是鄉里所穩知習聞者也同里老友金昌粹嘗語曰郡事公昔在典籍時自京還第適其時公之侄尚直以講經優畫入於公都會初擇矣公曰汝之工夫近者未能知其至於何境矣令以純通八分入格則可謂喜事也尚直跪對曰適有機會豫見講章故不無其效矣公與其伯氏同坐而左右親舊亦多會矣公聞而不樂毅然作色曰汝之所告是言也汝之工夫乃欺人之工耶凡人之為科業者將欲出身事君事君之道惟忠惟義而汝乃欺試官試官即奉命選士之任也汝欺試官名八榜中人雖知不獨不愧汝心乎即命桂楚驚責甚嚴左右初以其叅榜為賀矣及聞其罰責莫不歎服吾仲父亦聞其語曰此誠益明(公之初字)一人也己其平日訓子侄正家法之道類如此每自京還鄉其家多有悚戢矯革之事云爾同鄉宋古卓文揖嘗語余曰京鄉文官之交遊者多矣未有以趙都事之為人謀忠與人交信者也我初宦遊京都事戒余曰學而優則仕乃聖人之語也為仕者不可無學問之工今君年歲方壯何不交結士友以取有益也十分勸勉故我乃欽服其言追隨渼湖門下多有受教矯抹之 事云爾昌平高校理謙甫每逢我語及於公常曰吾與趙都事年齒雖上下而交分甚厚遂日相從知其人品甚高忠孝之誠姿實之態世所罕見而惜其名位不稱終老於散職云而且曰都事身後其子姪凡節何如而科工亦如何耶余答曰其長子尚岳家業有將進之勢次子尚垕科工有將進之實其餘望為一鄉所推也高校理曰都事居京常患計活之苟艱矣今則家業稍進是亦可喜也尚垕之科工居所熟知而繼聲尚遲甚可惜也云爾 通政大夫史判 昌原 黃仁儉 記 예조정랑공휘형겸행장(禮曹正郎公諱享謙行狀) 공이 그 백씨 첨추공으로 더불어 어려서부터 효도가 다른 사람보다 특이하니 한마을 부로가 다 칭찬하되 이에 형제가 반드시 큰 사람이 될 것이라 하였다.七·세 때 함께 입학하여 책을 끼고 사는 마을 앞 청룡부우에를 지내다가 문득 미끄러져 못에 빠져 안 보이매 사람이 놀라 급히 건져내니 허등지등 할때에 거조사 안상하고 끼고 있는 책을 손으로 꼭 잡았으며 글자가 젖어 아니했으므로 보는 장로가 다 놀라고 달리 생각하였 으니 그 학업에 독실한 마음을 이에서 보것도다. 어릴때에 이미 대인 이상이 있었고 나 이 겨우 약세에 이미 정서를 읽으니 보는자 경이하였으며 장성하여 백씨와 함께 동향 진사 이산거(李山擧)에게 수업하였다. 그 총민한 재애와 견실한 학성을 진사가 항상 청 찬하더니 하루는 형제 책을 덮고 서로 말하되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는 늙었는데 봉양 할 사람은 없고 우리 형제가 함께 공부한 것은 양전(兩全)지제가 아니라 어찌 안심하 고 공부를 마치겠는가. 이에 백씨는 스승에게 하직하고 돌아가 봉양하고 공은 몸을 세 워 영광을 어버이께 바치기로 하고 공부를 독실히 하여 과거하였으니 비록 문예가 뛰 어난 보람이나 가히 성효에 감동함을 보것도다. 청암찰방으로 재직할 때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며 문안한 절차와 좋은 반찬의 공통으로 날마다 달여 그 뜻한바를 이루고 여감 이 없으니 만일 성효의 지극함이 아니면 어찌 이와 같으리요 또 그 벼슬이 비록 밖에 나타나지 못하였으나 한마음으로 공사를 받을 고충성을 다하여 인군을 섬겼은즉 충효 一체라 함은 공을 두고 한말이 아니겠는가. 이는 향방이 다함께 송모(誦慕)한 바이다. 한마을 늙은 친구 김창수(金昌粹)가 일찍 말하되 도사공의 전적(典籍)으로 있을 때 집 에 돌아오니 그 족하 상직(尙直)이 장경과에 합격한지라 공이 가로되 나의 공부를 근 래에 알지 못하였더니 이제 합격하니 참착한 일이다. 상직이 많고 대답하되 마침 기회 아 있어 미리 장할 글을 받는고로 그 효험이 있었다 하니 공이 그 백씨와 같이 안젖고 좌우에 친구가 많이 모였는데 꾸짖어 가로되 나의 고한바는 옳은 말이나 네의 공부는 사람을 속인 공부로 다 무릇 과거 공부한 사람은 장차 몸을 받쳐 인군을 섬기고저 하 고 인군을 섬긴 도리는 오직 충성을 다할 것이어늘 내가 시관을 속이고 시관은 곧 명 령을 받들어 선비를 뽑는 직책인데 속이고 합격하였으니 사람이 비록 알지 못하나 네 스스로 부끄럽지 아니하냐? 곧 회초리를 가져오라 하여 달초하고 엄히 문책하니 좌우 하객이 그 책벌함을 보고 단복 아니한 자 없었다. 나의 중부가 그 말을 듣고 이는 익명 (益明공의초자)의 아직 이백이라 하였다. 평일 자질을 가르치고 바로 한 도리가 이와 같으니 매양경사(京師)로부터 집에 돌아오면 법도가 서고 문정이 숙연하였다. 한고을 송고부(宋古阜)가 일찍 내게 말하되 영향간에 교유한자 많으나 조도사 같이 모충력이 장하고 신의가 두터운 자는 보지 못하였다 말하고 내가 유영할때 도사가 나를 훈계하되 학문 이 넉넉하면 벼슬하라는 것은 성인의 말이니 벼슬한자 학문의 공력이 없으면 불사하고 이제 그대가 년이 방장하니 어찌 사우와 교유(交遊)하여 유익을 취지않는고 진심으로 권면하고로 공경하고 감복하여 미호(渼湖김행원호) 문하에 추종하여 아르침을 받고 바로 잡 은 일이 많았다 하였고 창평고교리 겸보(謙甫)가 매양 나를 만나 말하되 우리 친구 조 도사가 년치상하는 있으나 교분이 심히 두터운고로 날마다 상종하여 인적이 청고함을 알며 지성한 창의와 진실한 행실은 세상에 짝할리 없는데 그 명위아 덕을 따르지 못하 였다 하며 그 자손의 범절이 어떠하고 벼슬이 또 어떠한가 물었다. 내가 대답하되 그 장자 상악의 아산이 지름져가고 차자 상우의 과거공부가 진취되어 결실이 눈앞에 있는 것을 고향이 다 아는 바라 하니 고교리가 말하되 도사가 서울 살때 항상 생활이 구 차함을 근심하더니 이제 사업이 조금 윤택해진다니 이는 가히 이쁘나 상후의 과공을 향방이 다 아는 바인데 등과했단 소리가 없으니 심히 애석하다 하였다. 통정대부이판(通政大夫吏判) 昌原 황인검(黃仁儉)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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